박형택의 게임, 콘텐츠 그리고 투자
인공지능은 오마주와 패러디를 할 수 없다.
13. Apr. 2025
최근 인공지능을 이용한 ‘지브리풍’ 이미지로 변경한 사진을 개인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개인에게는 유행을 따라 한 것이고,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이미지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잠시의 유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창작자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이미 과거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은 창작자의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인공지능을 창작 활동에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남의 창작물을 이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예전 칼럼에서 인터넷에서 본 “원작을 알면 재미있는 것은 패러디, 원작을 알리고 싶은 것은 오마주, 원작을 감추고 싶은 것은 표절”이라는 글을 인용한 적이 있다. 패러디는 원작을 원형으로 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담거나, 유머, 풍자 등을 담는 것이다. 오마주는 원작의 작가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드는 일종의 헌사를 위한 것이다. 패러디와 오마주는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학습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표절은 남의 창작물을 자신의 창작물처럼 도용한 것이다. 오마주와 패러디는 그 존중과 존경을 믿는다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오마주와 패러디는 그냥 표절일 뿐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이미지는 ‘지브리풍’이라고 이름을 표시하였다고 하더라도 패러디나 오마주가 될 수 없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으며, 원작에 대한 존경이나 존중이 없다. 인공지능은 명령하는 사람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미지 제작에 명령을 내린 사람도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학습이 없으며, 창작자의 동의 없이 도구를 이용하여 도용한 것과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이 창작한 창작물을 촬영하여 포토샵으로 자신의 얼굴을 합성하고, 누구의 작품을 합성한 것이라고 써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행위는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꺾는 일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창작물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창작물은 아직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과도기의 혼란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인공지능을 이용한 창작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자신의 창작물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새로운 산출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원작자나 원작자의 동의를 얻은 사람으로 한정해야 한다. 이전의 기준으로 원작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창작 방법이나 표현 방법에 대한 인공지능 학습으로 만들어진 산출물은 도구를 이용한 표절과 다르지 않다. 원작자가 원하지 않는 표절이라면 인공지능을 이용한 표절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하는 ‘지브리풍’ 이미지는 표절의 한 형태이고, 비판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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